 |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은 첫 해, 나는 2학년 1반 담임을 맡았다. 칠판에 교재를 쓰고 있는데 별안간 뒤에서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라 돌아보니 반에서 제일 공부도 잘하고 인기가 많던 은지가 울고있었다. 항상 아이들이 공부에 상관없이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짝을 지어 앉혔는데 은지의 짝인 재훈이는 집안형편도 어렵고 공부도 못하는데다 말썽꾸러기였다. "왜 우니 은지야 ?" 은지에게 다가가보니 은지의 의자주변에 재훈이가 찢은 듯한 공책종이들이 마구 널려져 있었고, 내가 다가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재훈이가 신난 듯이 공책을 찢어 은지의 치마밑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순간 화가 난 나는 "재훈이 너 왜그러니! 짝꿍한테 짖궂은 장난하면 너 혼자 앉게 한다! 저기 구석에 가서 손들고 있어!" 큰 목소리로 나무라자 재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실 뒤로 가서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사십오분간 계속 벌을 섰다. 방과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은지를 달래주려고 은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은지가 또 울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리곤 띄엄띄엄 울먹이는 소리로 "선생님 사실은 제가 오줌을 쌌어요. 너무 무섭고 챙피해서 울음이 나왔는데 재훈이가 자꾸만 공책을 찢어서 제 의자 밑에 넣는 거에요" 하는 것이 아닌가. 은지는 그 사실을 재훈이가 자리에 돌아온 뒤에도 아무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릿한 심정이 되어 가만히 은지만 달래서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재훈이를 지나치며 모르는 척 꿀밤 한 대를 '툭' 때려주었다. 녀석이 '씌익'웃었고 나역시 오래도록 미소를 머금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17년이 지난 재작년 나는 너무나 예쁘고도 반가운 청첩 한 장을 받았다. 바로 재훈이녀석과 은지가 결혼한다는 청첩이었다. 그날 난 17년 전 운동장에서 재훈이을 바라봤을 때처럼 오래도록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