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취직이 안돼 시골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며 한 2년 뒹굴던 나는 비장의 결심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농토가 많다면 시골에서의 삶도 다양하게 계획해볼 만한 일이지만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부모님 곁에 일을 거든답시고 있는 것은 부모 등골만 빼먹는 것 같아 나는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달랑 가방 하나만 메고 서울로 온 것이다. 그러나 달리 갈곳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중학교때 친구가 자취하는 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친구 역시 여러 힘든 인생들과 단칸방에서 북적거리며 살고 있던 터라 나의 등장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취직이 될 때까지만 낯짝 두껍게 붙어있을 요량으로 나는 그들이 출근이나 일을 가고 나면 방을 청소하고 빨래를 해가며 눈칫밥을 먹고 지냈다. 그리고 며칠 뒤, 낮에는 식당에서 배달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면 시골에도 부치고 신세진 친구에게 고기근이라도 보답하려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6개월도 안돼 감기에 걸려가면서까지 고생스럽게 뛰었던 아르바이트비를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식당은 주인이 바뀌어버렸고, 대리운전을 알선해준 사장은 돈을 들고 어디론가 날랐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왜 살려고 발버둥치는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갑자기 맥이 풀리면서 나는 3일동안 심하게 앓았고 누워지내는 동안 차라리 죽고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친구는 이런 내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나흘만에 기운을 차린 나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동안 아파서 제대로 먹지를 못한 탓에 머리는 어질어질했고, 배는 고프다못해 쓰렸다. 그래도 죽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간신히 일어나 부엌으로 갔는데, 국수와 밥이 나란히 놓인 상이 차려져 있고 그 옆에 작은 쪽지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많이 힘들지! 그동안 열심히 살려는 네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번 일은 나도 마음이 아파. 서울이란 곳이 왼통 사기꾼 투성이지. 그렇지만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천하의 네가 아니잖아! 힘내라.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맛있는 거 만들어놓고 싶었는데 자본이 너무 적구나. 그래도 많이 먹고 다시 시작하자!….’ 친구는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동생들 학비를 보내고, 한방을 쓰는 어려운 사람들과 방세와 각종 공과금을 나눈 뒤 쌀과 반찬을 사서 한달을 버텨나가는 급급한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나를 위해 집에 남아 있던 마지막 쌀과 용돈으로 상을 차려둔 것이다. 나는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꾹꾹 삼키며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친구신세를 꼭 갚기 위해서도 반드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날 친구의 사랑으로 꽉찬 밥을 배부르게 먹은 나는 다시 바닥을 치며 일어났고, 그 때의 한그릇 사랑의 밥은 내 평생 친구라는 의미를 가슴에 새기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