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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행선지는 일본이다. 두어 번 가보기는 했지만 늘 비행기를 타고 갔었다. 그러나 이번엔 배를 타고 갔다. 세계는 넓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배 타고 떠나는 여행을 꿈꾸어 왔다. ‘아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 배에서 밥을 먹고 배에서 목욕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함께 간 지인들과 배정받은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편안히 잠을 자고 나니 배는 어느새 목적지인 일본 시모노세끼항에 정박해있었다. 비행기로는 어림없는 편안함, 나는 그게 신이 났다. 이번 여행은 여느 여행과 별 차이가 없었다. 관광이란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 온천물에 족욕을 하고 일본왕들의 신을 모셨다는 신궁과 후꾸오까 남장원에서 300톤 청동 와불을 보았다. 또 일본 대학자들을 모셔놨다는 신사를 둘러보다가 난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듯 충격에 빠졌다. 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사람들 코와 귀를 베어다가 무덤을 만들었다는 귀무덤과 코무덤이 생각날까. 수많은 조선 백성들을 납치해다가 노예로 판(흑인노예의 1/40가격으로) 만행의 나라 일본. 그들은 아직도 한국인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친절로 철저하게 위장했지만 주머니에 감춘 송곳이다. 화장실벽에다 형편없는 한글로 ‘화장지로 손을 닦지 마시오’ 라든지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써 붙인 메모에 왜 내 자존심이 그렇게 짓밟혔을까. 베알도 없이 놈들의 신사는 보면서 귀무덤 코무덤을 보는 여행상품은 왜 못 만드는 건가. 왜! 돌아오는 길엔 심하게 배 멀미를 했다. 그 옛날 사무치는 슬픔으로 이 바다를 건넜을 민족을 생각했다. 그 슬픔의 현해탄을 나는 희희낙락 관광을 하며 건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원혼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그 검은 바다를 떠돌고 있을까.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산하와 정경들이 머릿속에서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비닐 한 조각 담배꽁초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던 깨끗한 거리, 그 많은 산과 들이 손질을 한 듯 단정했던 모습들. 나는 죽어도 일본에겐 뒤질 수 없다고 나름 각오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큰길가 휴지와 꽁초를 줍고 쓸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쓰레기를 청소한 후 그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결코 너희에게 뒤지는 민족이 아니라고. 그러나 열흘도 못돼 굳은 의지는 힘을 잃고 말았다. 주워도 주워도 끝 없는 꽁초와 남발되는 비닐봉지와 스치로폼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소하게 생각하고 지키지 않는 공중도덕, 공공질서가 함부로 버려지고 있는 한 우리는 일본을 앞지를 수 없을지도 몰라. 절망이 오래도록 나를 감싸고 놓아주질 않는다. 민영이(전 문인협회영동지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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