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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던 그해 겨울. 중학생인 동생이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언니, 라면 끓여먹게 돈좀 줘.” 얼른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동전 하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10원짜리 동전을 모아 둔 저금통을 깨어 동생에게 건네주었다. 동생친구 보기가 부끄러워 “언니가 과외비를 아직 못 받았어” 하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는 두 손 가득 동전을 쏟아주면서 속울음을 삼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나는 우리 집 형편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엄마의 돈놀이로 사표를 써야 했고, 엄마는 빚을 갚지 못해 사람들을 피해다녔다.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가까운 친구 엄마에게도 돈을 갚지 못했고, 결국 외가에서조차 엄마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상처투성이의 삶을 사신 아빠가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엄마는 돈을 번다며 떠났다. 동생과 나는 서로를 의지하며 둘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겨울이면 연탄가스가 심하게 새어들어 밤새 창문을 열어놓아야 했고, 빨래가 얼까봐 방안에 물이 흐르는 옷들을 널어놓고 지냈다. 고등학교를 나와 어렵게 금융기관에 취직이 되었지만, 거기서도 엄마의 존재가 내 삶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된 빚이 몇 년째 연체 중이었던 것이다. 결국 눈총을 견디지 못한 나는 몇 푼 안되는 퇴직금으로 연체돈을 끊고 눈물을 삼킨 채 그곳을 나왔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시험공부를 했다. 밤이면 저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문제집을 들었고, 그런 나를 보며 동생도 그 나이 또래에 하고싶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뒷바라지를 해줬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오로지 일과 책, 노동과 공부만 되풀이 했다. 주위의 비웃음 따위는 귓등으로 흘렸다. 투잡, 스리잡으로 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잠 잘 시간을 줄여가며 무식하게 책을 파고든 결과 홀로 공부한지 4년 만에 ‘합격증’을 받아들고 나는 동생을 부등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차츰 생활이 안정돼가자 늦게나마 동생에게 대학에 갈 것을 권했다. 내가 졸업하지 못한 꿈까지 실어 동생만은 행복한 캠퍼스생활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은 물같이 흘러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고, 그제야 나는 늦게나마 못다한 공부가 하고 싶어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이제는 죽기살기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하나하나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를 하니 세상이 새로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엄마를 원망하며 나만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내 삶이 주위에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리 큰 고생이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뒤늦게 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정말 먹고살기 힘들어서 학교를 못다닌 사람, 환자 뒷바라지를 하느라 학업을 포기했던 사람 등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나니 나와 동생은 이제야말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늦기 전에 그 원망스럽던 엄마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핏줄인데 용서하지 못할 일이 또 무엇이 있으랴 하는 깨달음이 연말 추위 속에서 조용히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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