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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열녀
영동군

영동지방에는 옛날부터 방아열녀 이야기가 주로 부녀자들의 입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양씨(梁氏)부인이다. 본디 그녀는 친정이 청주로, 이곳 김씨 가문의 선비인 김정(金貞)에게로 시집을 왔다. 청주에서 멀리 영동땅까지 시집을 오게된 그녀는 매사 부지런하고 집안일을 잘하여 곧 살림 잘하는 부인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런데 부인의 행복도 잠시 뿐, 뜻하지 않은 불행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 본디 허약했던 남편이 결혼한 뒤 병색이 더욱 짙어져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고만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청상이 된 그녀는 한동안 살아갈 희망도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 잠겨있을 수도 없는 일. 살림을 꾸리고 늜은 시부모를 봉양하자니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품을 팔아야만 했다.
남편의 3년상을 치르는 동안 그녀의 방아품팔이, 베품팔이 등 노동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가사를 꾸려나가면서도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해 그녀의 부지런함과 효성스러움이 인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살림형편도 점점 좋아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그녀는 시부모께 사실을 알리고 서둘러 친정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친정에 가보니 위독하다던 친정아버지가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반기는 것이 아닌가. 친정부모는 딸이 오자 방으로 앉힌 다음 곧바로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고만 자식이 안타까워 거짓말로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시댁으로 가지말고 마땅한 사람이 있으니 어디 먼 곳으로 함께가 살도록 하라고 강권했다.
건강한 친정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 이미 짚이는 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진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친정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이 걸려 '밤새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겠다'고 말하곤 일단 그곳을 물러났다. 그리고 몰래 친정집을 빠져나와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시가가 있는 영동까지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게다가 길은 어둡고 날이 추워 도무지 어디로 해서 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언제 붙잡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림짐작으로라도 그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옆에 화등잔만한 불이 다가오더니 자기 앞을 비추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은 황소만한 범의 눈에서 뻗쳐나오는 빛이었다.
섬짓했지만 상황이 다급하고보니 그녀의 마음은 오히려 대담해졌다. 죽기를 각오하고 떠나온 몸이니 무엇이 더 두려울 것인가.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길을 재촉했다. 옆의 범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녀 앞을 가는 것이었다. 범의 그러한 길 인도는 새벽녘이 될 때까지 계속되더니 날이 밝아오자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하여 무사히 시집에 당도한 그녀는 아무런 내색없이 전과 똑같이 시부모봉양과 품팔이 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해나가기를 몇년, 그녀에게는 어느새 '방아열녀'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고 그녀의 효행은 자연스럽게 고을 원님 귀에 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원님은 방아열녀에게 평생 부역을 면제해주며 효행을 칭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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