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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할미
영동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풍습이지만 사오십대 중년층만 해도 음력 2월 초순에 바람이 세게 불면 '영동할미가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 착한 관리의 넋이 바람으로 변해 원을 풀려고 한다는 '영동할미'이야기는 요즘같은 매스미디어 시대엔 한낱 우스개거리로 흘려버릴지 모르지만 그 옛날에도 관리의 부패가 심해 바람으로 변한 주민이 일침을 가했다는 얘기여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일이다.

당시 정치는 부패했고 관료들의 수탈은 극에 달해 농민들의 생활은 참혹했다. 피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관에 빼앗기기 일쑤였고, 바른 말을 하고 반항하는 농민들은 감옥으로 가는 것이 예사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영동의 관아에 있는 한 관리는 항상 농민편에 서서 못된 관리들을 타일렀고,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게는 약과 식량을 사서 나눠주곤 했다. 그 관리는 칠순노모를 모신 홀아비였는데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 모친을 보살피고 손수 밥을 지어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지성으로 모시던 노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관리의 슬픔은 극에 달해 음식을 폐한 채 곡을 멈추지 않아 그 구슬픈 소리가 이웃을 울리게 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이웃사람들이 애처로워 상주에게 밥을 지어 주었으나 몇 숟가락을 뜨자마자 그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동네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노모와 함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러나 장사를 지낸 다음날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몰아쳐 나무가 꺾이고 고을을 휩쓸고도 바람은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관청에서나 주민들은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런 어느날 미친듯이 불어대는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한 여인이 군수 앞에 나타났다.

"지금 이 고을에 광풍이 몰아치는 것은 관이 부패해 그것을 바로 잡으려다 노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관리의 혼이 바람으로 변해 그 원통함을 풀려는 것입니다. 그의 넋을 위로하지 않으면 이곳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황폐한 땅으로 변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군수는 서둘러 관리와 주민들을 거느리고 그의 무덤을 찾아가 며칠동안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서서히 바람이 멎더니 고을은 햇빛이 돌고 평온을 되찾았다.

그 후에도 매년 2월초에는 집이 쓰러질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사람들은 2월초에 부는 바람을 '영동바람'이라 부르며 의롭고 효성이 지극했던 관리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는 애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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