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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봉 이야기
영동읍

산의 모양이 용머리같다 하여 이름붙여진 용두봉.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린 용두봉은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현재 영동읍사무소가 있고 머리부분은 충혼탑이 있으며 허리쯤에는 읍청루가 있어 영동읍민의 공원구실을 톡톡히 하는 산이다.

옛날에는 용두봉이 영동읍에 자리잡고 있던 것이 아니고 금강 하류에 떠있었다고 한다.

금강 하류에는 옛날 용 부자(父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들 용이 아버지 용에게 집을 나가 자립해서 살아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버지 용은 아들 용의 결심이 기특해 쾌히 승낙을 했다.
그리고 이르기를『소백산맥이 갈라지는 충청도 영동고을 삼도봉 아래가 신이 내리신 좋은 자리니 그곳에 가서 살아보아라』하고 권했다. 아들용은 아버지의 뜻대로 이튿날 강물줄기를 타고 길을 떠났다.

금강상류로 올라가 마침내 소백산맥이 보이는 영동고을까지 온 아들용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소백산맥 아래 복스러운 지점에 이르려니'하고 영동읍 중심지쯤에서 급히 상류로 올라갔다.

그때 마침 빨래하러 나온 아낙 하나가 개울에서 용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용이 올라간다!"
그러자 함께 나온 아낙들도 "용이다 용, 용이 올라간다!"하고 일제히 소리쳤다.

그 순간 부정을 탄 아들용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서서히 산모양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모양의 산, 지금의 용두봉으로 앉아 영동고을 남쪽을 가로막는 바람에 영동은 아주 작은 골짜기가 되어버렸다는 전설이다.

세월이 흘러 일제 때의 일이다. 일제는 용두봉의 꼬리부분에 해당되는 산을 잘라 매천리로 가는 길을 닦으려 했다. 일본 공사감독의 지시로 바위를 깨뜨리자 바위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이 아닌가.

이어 갑자기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내리 퍼붓더니 일본인 공사감독이 그 자리에서 벼락에 맞아 죽었다.
이때 사람들은 용이 꼬리가 잘려 보복을 한 것이라고 했는데 용의 보복은 8.15 광복이 되면서 풀어져 영동읍에서 매천리로 가는 길을 닦아도 노여워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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